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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ronomy

천체망원경을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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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망원경을 사다

이것은 나의 평생 숙원사업과도 같았다. 초등학교 때, 아니 그보다 더 어릴 적 아빠와 아침 운동을 나갔다가 처음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그때는 아빠가 가르쳐준대로 북두칠성을 제대로 찾지 못했지만, 이후 5학년 수련회 때 산정호수에서 드디어 북두칠성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요즘 같은 늦가을 새벽 푸른 여명 속에서 본 집 앞의 오리온자리는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 경험은 대학 시절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동아리 생활은 즐겁고 충만했다. 그러나 가슴 한편에 아쉬움이 남았다면, 망원경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친구들은 잘만 잡는 천체 대상을 나는 쉽게 찾지 못했다. 손재주가 부족했는지 대상을 너무 오래 찾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미안했고, 결국 그걸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사이 어떤 친구들은 천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도 하고 싶었지만, 당시 내게는 SLR도 DSLR도 없었다. 그렇게 관측과는 점차 멀어졌고, 별자리를 어느 정도 알고 초보자에게 설명할 수준은 되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느덧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았다. 캠핑장에서 아이들에게 별을 설명해 준 적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슈퍼문이 뜬 밤에 아이들과 나갔는데, 큰 아이가 유독 휴대폰으로 달 촬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새벽, 잠이 깨어 거실 창문을 열었는데... 맞은편 아파트 옥상 위로 오리온 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곧바로 아이들을 차례로 깨워 보여주고, 또 밖으로 데리고 나가 쌍안경으로 오리온 대성운과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보여주었다. 며칠 뒤 칠갑산 오토캠핑장에서도 밤하늘이 좋았고, 쌍안경으로 몇몇 별자리를 알려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내 마음속에서 열정이 다시 꿈틀거렸다. 와이프에게 선언했다. "나 망원경을 사야겠어. 돈도 있어." 결국 구글 Gemini와의 치열한 토론과 상담 끝에, 천체망원경을 질렀다.

Skywatcher BK130PDS + AZ-GTi + Player One Mars-C II

망원경 선택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십 가지의 제조사와 부품, 엔트리부터 전문가급까지 스펙트럼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성이냐 딥스카이냐, 안시 관측이냐 사진 촬영이냐에 따라 선택지가 갈린다.

이 복잡성을 AI 시대가 비교적 간결하게 정리해 주었다. 나의 20대 동아리 활동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는 완전 초보는 아니지만 관측 영역에서는 여전히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보고 들은 것은 있어 초보라 하기도 애매한, 아주 어중간한 수준이다. '대학 때도 못한 호핑(Star Hopping)을 지금 할 수 있을까?', '춥고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흘렀고,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더 이상 호핑 실력이 중요하지 않은 'Go-To(자동 도입)' 기술을 탑재한 망원경들이 보편화되었다. 또한 사진 촬영에 한계가 있는 경위대식을 보완하기 위해, 약간의 부품 추가로 적도의처럼 하이브리드 사용이 가능한 마운트도 판매되고 있다. 물론 저렴한 모델은 지지 하중이 작아 장노출 사진 촬영이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장노출을 위해서는 무거운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피스 홀더에 장착하는 CMOS 카메라가 등장하며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DSLR의 고질적인 노이즈나 수차 문제도 없고, 가볍기 때문에 마운트 적재 중량에 큰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30초 이내의 짧은 노출 사진만으로도, 옛날보다 훨씬 좋아진 노트북 사양(고속, 고용량)을 이용해 스태킹(Stacking) 처리를 하면 훌륭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사진 촬영까지 도전할 심산으로 행성과 밝은 딥스카이를 커버할 수 있는 IMX662 센서 기반의 Player One Mars-C II까지 구매해 버렸다. 이 정도면 안시 관측도 쾌적하게 즐기고, '맛보기' 수준의 사진 촬영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가슴뛰는 일

요즘 나는 뉴스도 잘 보지 않는다. IT 기사나 정치에도 별 큰 관심이 없어졌다. 대신 오로지 천체 관측 관련 콘텐츠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다. 이 정도의 열정이 내게 언제 있었던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만 보면 가슴이 뛰고 흥분되던 나의 이십 대 때처럼, 이제는 나의 취미에 정성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취미를 더 재미있게 즐길 아이템을 구매할 재력도 생겼다.

무엇보다 그런 열정과 관심을 보여줄 나의 가족, 나의 분신들이 내 곁에 있다. 두 아이가 관심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은 꽤 다르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낭만이 무엇인지, 낭만을 즐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다. 이는 내가 이 취미를 오래도록 이어가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망원경은 다음 주에 올 것이다

최대한 아껴서 사야 했기에 직구를 선택했고, 배송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기다리는 이 시간이 가슴을 더 뛰게 만든다. 그동안 요즘 트렌드에 맞는 성도 앱, 날씨 앱, 광공해 지도를 공부하고, 무엇보다 관측지를 찾고 숙소를 예약하느라 할 일이 많다. 그래서인지 삶에 활력이 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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